지난해 국내 4대 금융지주가 합산 18조 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는 뉴스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대단한 풍요 속의 결실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이면의 내역을 꼼꼼히 뜯어볼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지주의 든든한 맏형인 은행이 축배를 드는 동안, 날개 역할을 해줘야 할 카드사와 보험사가 조용히 뒷걸음질 치고 있었으니까요. 과연 이 화려한 실적 잔치 속에서 진짜 모두가 웃고 있는 것인지 그 실상을 파헤쳐봤습니다.

핵심 파이 3개가 동시에 쪼그라든 카드사의 삼중고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들이 지난해 전년 대비 약 1,500억 원가량 수익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면 카드사가 직면한 위기의 구조가 꽤나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업계 선두를 달리는 신한카드의 당기순이익이 16% 넘게 줄어들었고, KB국민카드와 하나카드 역시 영업수익과 이익 면에서 일제히 뒷걸음질 쳤습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준 것은 정책적으로 단행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였습니다. 가맹점 수수료는 카드사가 소비자의 결제를 대신 처리해 주는 대가로 식당이나 마트 같은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요율을 말합니다. 카드사 본업 수익의 가장 단단한 주춧돌인데, 이 수수료가 계속 낮아지다 보니 수익 기반 자체가 통째로 흔들려 버렸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경기 흐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가 취약해지는 구조적 문제라 더 뼈아픕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금을 끌어오는 비용마저 치솟았습니다. 여신전문금융사인 카드사는 은행처럼 고객의 예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출을 해줄 재원을 마련하려면 스스로 채권을 발행해야 합니다. 시장에서는 금리가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고금리 환경이 완고하게 버텼고, 결국 카드사들은 비싼 이자를 내가며 눈물을 머금고 자금을 조달해야 했습니다. 쓸 돈을 빌려오는 비용은 늘었는데 정작 나가는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희망퇴직 같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비용까지 겹치며 이익이 쪼그라드는 역설이 발생했습니다.
마지막 숨통마저 조인 것은 '금융당국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였습니다. 카드사의 짭짤한 수익원이었던 단기 고금리 대출 상품인 카드론의 취급 경로가 꽉 막혀버린 것입니다. 규제의 칼날 앞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마지막 수익의 축마저 흔들리면서 매출 자체가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주요 수익원인 수수료는 낮아지고, 돈을 빌려오는 이자 비용은 늘어났으며, 대출 규제로 상품 판매까지 막히는 삼중고가 동시에 덮친 셈입니다. 데이터 사업이나 새로운 비금융 서비스를 확장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것이 실제 장부에 찍히는 이익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겉만 화려한 보험사의 실적, 배당이 사라진 기묘한 회계
카드사가 대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보험사는 '착시'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묘한 상황입니다. 주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들의 합산 순이익 숫자를 보면 언뜻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철저한 양극화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대형 보험사 두 곳이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을 뿐, 나머지 다수의 계열 보험사들은 많게는 50%가 넘는 감소세를 보이며 수년 만에 심각한 역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손해보험사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급격하게 치솟은 손해율'이었습니다. 손해율이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 대비 실제로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뜻합니다. 매년 자동차 수리비와 의료비는 무섭게 상승하는데, 자동차 보험료는 오랜 기간 동결되거나 오히려 인하 압박을 받았습니다. 들어오는 돈은 제자리인데 나가는 지출만 계속 늘어나니 손익 장부가 버텨낼 재간이 없는 구조입니다.
생명보험사 사정은 또 다릅니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기존 보험 상품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새로운 계약을 따내기 위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는 고스란히 사업비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보험사가 사전에 예측했던 예정 사고율과 실제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율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손실까지 확대되어 어렵게 벌어들인 투자 수익까지 함께 잠식당했습니다.
가장 기묘한 대목은 바로 '배당 문제'입니다. 새롭게 도입된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보험 계약의 수익을 장기간에 걸쳐 꼼꼼하게 나누어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 기준이 적용되면서 새로운 계약이 늘어날수록 고객에게 장래에 돌려줘야 할 해약환급금 준비금을 엄청난 규모로 미리 적립해두어야 하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이 준비금은 서류상 당기순이익을 깎아 먹지는 않지만,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진짜 알짜배기 재원인 '배당 가능 이익'을 직접적으로 줄여버리는 효과를 냅니다. 결과적으로 장부상으로는 수천억 원의 흑자가 났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는데, 정작 주주들에게 줄 배당금 통장은 텅 비어버리는 기묘한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주요 보험사들의 올해 배당 전망에 붉은 불이 켜진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짜 실적 잔치는 비은행 날개가 날아오를 때 시작된다
결국 고금리 변동성 환경 속에서 거대하게 불어난 자산과 부채의 만기 및 금리 균형을 정교하게 맞추는 자산부채종합관리 능력이 흔들리면서, 금융지주의 비은행 계열사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벌어다 준 역대급 실적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달콤한 사실이지만, 그 화려한 왕관 이면에서 카드사와 보험사가 끊임없이 보내고 있는 경고 신호를 무시한다면 장기적인 투자 판단에서 거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비은행 부문의 다변화된 경쟁력이야말로 금융지주의 장기적인 주주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입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단순히 금융지주 전체가 발표하는 당기순이익의 총합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주주의 돈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계열사들의 실질적인 자기 자본이익률 동향을 더 예리하게 뜯어보아야 합니다.
맏형인 은행이 든든하게 닦아놓은 멍석 위에서 카드사와 보험사라는 비은행 날개가 함께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축배를 들며 진짜 실적 잔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 본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시장 공시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된 경제 에세이이며, 특정 금융 상품이나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나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 결정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